여든 일곱 '새내기 소설가'…'진짜 노년의 삶'을 그리다

입력 2022-10-25 17:53   수정 2022-10-26 00:21

베르나르 피보(87·사진)는 프랑스의 유명 문학평론가다. ‘문단의 교황’이라 불렸다. 전설적인 독서 토론 TV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를 진행했고, 2014~2019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그런 그가 2019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곧 여든다섯 살이 되는데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

지난해 1월 프랑스 문학계는 또 한 번 놀랐다. 은퇴한 줄만 알았던 피보가 소설책 한 권을 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든여섯 그의 생애 첫 소설이었다. 그 장편소설이 최근 번역돼 <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생각의닻)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피보는 책 속 인물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책은 저자와 닮은 기욤이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기욤은 막 여든두 살이 됐다. 얼마 전까지 중견 출판사 대표로 문화계를 주름잡았지만, 은퇴한 삶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여기저기 몸도 아프고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약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는 친구들과 ‘80대 파리청년회’를 결성한다.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8명의 멤버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노인네들 사는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늙어도 사는 건 다 똑같다. 여자에게 주책없이 들이대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내기에 져 문신을 하기도 한다. 부부끼리 별거 아닌 일에 죽기 살기로 싸우고 치사하게 나이를 앞세우는 일도 허다하다.

피보는 자신의 실제 이야기와 지어낸 이야기를 적절히 뒤섞어 노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대단한 사람이 쓴 책인데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노년의 지혜로 포장한 훈계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 빈자리를 솔직함과 유쾌함, 다정함이 채운다. 이재룡 문학평론가는 “근엄한 문어체를 버리고 대화하듯 써내려간 말투도 이 책의 온기를 더한다”고 말했다.

누구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노년의 사람들이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책 말미에 기욤은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내 앞에 남은 삶이 어느 정도일지에 연연하기보다는 기운을 차리고 내일을 준비하는 게 더 낫다. 인생의 마침표가 찍힐 날이 최대한 뒤로 미뤄지길 바라면서 잔소리 심한 내 쌍둥이 자아가 조언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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